돈이 전부다

02/21/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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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의 경험을 통해서 느낀건 결국엔 돈을 버는게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돈이란건 좇을수록 멀리 달아나는 것이고, 좀 더 나아가서 돈만 좇다가는 속물이 되기 쉽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돈은 직접 찾아나서지 않으면 내게 저절로 오기는 커녕 눈 앞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돈은 다른 그 어떤 지표보다 더 명확한 길을 제시해주는 지표다. 내가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절대로 누가 나한테 와서 그냥 돈을 주고 가진 않기 때문이다. 뭔가를 해야 누가 나한테 돈을 준다. 그래서 돈을 벌고 싶으면 필히 고민을 해야한다. 내가 뭘 해야 사람들이 나한테 돈을 더 많이 줄까?

나는 컴퓨터로 서비스를 만들어서 인터넷에 팔아 돈을 버는 개발자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어떤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야 사람들이 돈을 주고 살지 고민한다. 돈을 조금 버는데는 관심이 없고 많이 벌고 싶으니 일단 궁극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쓰는 서비스를 구상한다. 인터넷에 이미 공짜로 쓸 수 있는 서비스가 널렸으니 사람들이 돈을 내고 쓸 정도면 정말 그 사람들한테는 없어서는 안될 수준이 돼야 한다.

근데 그런 서비스를 만드는건 고사하고 구상하는 것 자체도 무척 어렵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인지한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풀 수 있는 문제라는걸 알지 못한다. 내가 똥이 마렵기 전까지는 변기통이라는 개념도 안 떠오르고, 수세식 변기통을 처음 써보기 전까지는 푸세식 변기통이 불편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 가진 불편함을 내가 먼저 발견해서 푸는 것보다 내가 직접 겪은 불편함을 푸는 것에 집중 한다. ‘나 같으면 이런 서비스가 있으면 한 달에 만원은 내고 쓸거 같은데 없네? 만들어 봐야겠다.”

언뜻 보기에는 이런 방식이 원시적으로 보일수도 있다. 특히나 머리가 조금 크면 이런 원시적인 방법보다는 좀 더 과학적이고 효율적으로 서비스를 구상한답시고 이런식으로도 해본다. “네이버 키워드 툴로 연구를 해봤더니 명상 이라는 키워드가 지난 5년간 매년 30%씩 성장했으니 명상 앱을 만들어야겠다” 혹은 “요새 스마트 스피커가 빠르게 보급되고 있으니 스마트 스피커 관련 서비스를 한번 만들어봐야겠다.” 아니면 또 개발자들이 특히나 좋아하는 방식인 새로운 신기술 (예: 딥러닝) 이 나오면 그 신기술을 가지고 풀 문제를 찾는 방식도 있다.

어떤식으로 서비스를 구상했건 간에 내가 좋은 서비스를 만들었는지는 돈이라는 지표를 보면 된다. 내가 이 서비스를 만들고 홍보하며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은 얼마고, 유저들이 한 달에 돈을 얼마나 내는지 보면 내가 만든 서비스가 진짜로 의미 있는 문제를 풀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만약에 서비스도 출시 했고 홍보도 꾸준히 했으며 보완하는 작업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했는데도 돈이 안들어온다면 내 기준으로 이 서비스는 가치가 없는 서비스다. 다르게 말하면 지금 세상엔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를 풀었거나 아니면 제대로 풀지 못했다는 소리다. 이익은 몰라도 매출도 안나오면 이 서비스는 접어야 된다 [1].

“돈이 안들어오면 접어야된다.” 자영업을 하시는 사장님들께는 너무 당연한 소리다. 근데 이상하게 나처럼 인터넷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 중엔 이 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면 실제 고객이 없거나 내 서비스의 고객들이 돈을 내지 않아도 어차피 내가 혼자서 만든거면 고정비도 없고, 또 행여 운이 좋으면 서비스의 “성장 가능성” 을 벤처캐피탈이나 정부에게 팔아서 돈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정부나 벤처캐피탈한테서 돈을 받는건 고객들한테 돈을 받는 것보다 더 쉽다. 고객들은 이 서비스가 그들이 가진 중요한 문제를 풀어주지 않으면 절대로 돈을 주고 서비스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투자를 심사하는 사람들은 고맙게도 투자를 받으러 온 사람이 어떤 대학을 나왔고, 어떤 회사에서 일했고, 누구랑 일해봤고, 전엔 뭘 만들어 봤고 등 여러가지를 봐준다. 안드로이드를 만든 앤디 루빈 같은 사람이 새로운 서비스를 내기 위해 투자 유치를 하고 싶으면 모르긴 몰라도 매출은 커녕 사업 계획서 한 장 없이 샌프란시스코 시내 한복판에서 손만 들어도 투자자 몇 명은 달려들거다. 옛날에 한국에서 다음, 네이버가 막 나오던 시절에는 카이스트 출신 개발자 한 명당 1억씩 묻지마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유저들은 돈을 내고 서비스를 살지 고민할때 서비스를 만든 사람이 누군지, 대학을 어디 나왔는지, 출신은 어딘지 전혀 상관 안하고 오롯이 서비스의 가치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투자자들보다 유저들이 더 깐깐하고 더 정확하다. 투자자들이 많고 유저가 없는 서비스는 망하지만 투자자들은 없는데 돈을 내는 유저가 많은 서비스는 대박난다.

하지만 이걸 이성적으로는 잘 이해하는 사람도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서비스를 출시하고 초창기에는 내 서비스는 아직 “pre-revenue” 이지 가치가 없는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 이후에 아무리 기능을 더 집어 넣고 홍보를 해봐도 매출이 안생기면 그 땐 갑자기 다른 지표를 보기 시작한다. 친구들은 좋다고 한다거나, 매출은 없지만 유저 수가 더 늘었다거나 등의 이유로 서비스의 가치를 정당화 한다. 내가 어렵게 만들어서 낸 서비스를 내 스스로 가치 없다고 평가하는건 특히나 나 같은 개발자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다. 대신 이것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가치 없는 서비스에 매달리며 내 시간은 물론이고 같이 일하는 팀원들의 시간도 같이 날려버릴 수 있다.

나도 지난 몇 년동안 여러 서비스들을 내고 접었는데, “과학적인 방법” 으로 다른 사람들 문제를 머릿 속으로 구상하거나 트렌드를 보고 만든 서비스들은 다 잘 안됐다. 흔히 말하는 “린” 한 방식으로 잘 될 것 같은 아이디어를 머릿 속으로 떠올려서 서비스 없이 랜딩 페이지부터 만들어서 페이스북 광고를 돌리는 방법도 많이 해봤다. 근데 이렇게 하니 유저 수는 기본적으로 모이는데 정작 서비스를 오래 사용하거나 돈을 내는 고객들은 도저히 모이지가 않았다.

결국 내가 나중에 찾은 제일 좋은 방법은 트렌드 같은걸 무시 하고 내가 지금 당장 가진 문제에 집중해서 서비스를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내고 (“나 같으면 만원정도는 내겠다”) 고객들을 직접 광고 없이 모집하는 방법이다.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 올리고 하면서 내가 만든 서비스를 직접 알린다. 이상하게 이렇게 했을때 처음엔 성장이 좀 더디지만 가면 갈수록 돈을 내는 고객이 계속 늘어나고 서비스의 지속성이나 방향이 확고해진다. 돈에만 집중하니 자연스럽게 고객들이 반드시 필요로 하는것만 찾게 되고 나 혼자만 좋다고 생각하는 기능이나 코드 리팩터링 같은 것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서비스 만들땐 돈이 제일 중요하고, 돈이 전부다.

Notes

[1] 의도적으로 매출 없이 높은 유저 성장률만 가지고 오랫동안 버티다가 결국 성공하는 회사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구글, 페이스북, 카카오톡 같은 회사들인데 1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한 아웃라이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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