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on Song

일식집 사장은 회를 썰 줄 알아야한다

2020-05-16

누가 사업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무슨 사업을 하는지 먼저 묻는다. 그런데 사실 뭘 하는지보단 누구랑 같이 사업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누가 사업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무슨 사업을 하는지 먼저 묻는다. 그런데 사실 뭘 하는지보단 누구랑 같이 사업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어차피 아이디어나 제품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지만 같이 하는 사람들 (i.e. 공동 창업자) 은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업을 할때는 초기 팀 빌딩을 얼마나 잘 하냐에 따라서 성공 여부가 갈리기도 한다. 그럼 사업을 시작할때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들을 찾고 영입할 수 있을까?

예전에 선배 창업가분께 좋은 사람들을 찾고 영입하는 법에 대해서 여쭸더니 “일식집 사장은 회를 썰 줄 알아야한다” 고 조언해주셨다. 그때 당시에는 솔직히 공감이 안 갔다. 당장 지금 창업에 관한 영상들이나 블로그만 찾아봐도 팀 빌딩을 할때 중요한건 내가 못하는걸 해줄 수 있는 멤버를 찾는거라고 말한다. 지금 성공한 인터넷 회사들만 봐도 코딩은 못하지만 비젼이 있는 창업가가 코딩을 하는 개발자와 같이 시작해서 너무나도 잘 된 사례가 많다. 그래서 그때는 속으로 사장이 굳이 직접 회를 썰줄 몰라도 좋은 주방장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좋은 주방장 찾는법을 여쭸더니 직접 주방장이 되야한다고 하신 말씀의 뜻을 몰랐다.

그런데 지난 몇 년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혼자 이런 저런 서비스를 만들다 보니 의도치 않게 주방장이 돼버렸다 (일식집은 아직 차리지도 못했지만). 서비스를 만들때 직접 기획, 디자인, 코딩, 마케팅까지 다 하다보니 어떤게 중요한거고 어떻게 하는게 잘하는건지에 대한 기준이나 철학이 저절로 세워졌다. 그제서야 그 조언이 이해가 갔는데, 애초에 일식집의 좋은 주방장을 찾는 힘은 회를 직접 썰어본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옛날의 내가 같이 일할 개발자를 찾는다면 그때는 흔히 말하는 대기업 출신 (e.g. 구글, 페이스북 등) 개발자들을 찾았을거다. 그들의 실력은 이미 취업 관문에서 검증됐으니 인터넷 서비스를 할 때 무조건 같이 창업하면 좋을거라고 생각했을거다. 그런데 직접 대기업에서 일을 해보니 대기업에서 개발자가 흔히 하게 되는 일은 이미 성숙한 서비스의 코드 베이스를 유지, 보수 하는 일이지 새로운 서비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게 아니다. 또 대기업에서는 대부분 회사 내부 기술들을 (proprietary tech) 가지고 일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막상 회사 밖의 환경에서 서비스를 만들려고 하면 뭘 써서 만들어야 할지 몰라 처음부터 막힐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 만약 내가 같이 창업할 개발자를 찾는다면 이 사람이 어떤 서비스를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 봤는지, 좋아하고 싫어하는 기술에 대한 생각이 확고한지, 유저에 대한 empathy가 얼마나 있는지 같은 것에 기준을 두고 찾을것이다. 마케터나 디자이너를 뽑을때도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이 세워놓은 기준이 아닌 내가 직접 시도해본 경험을 토대로 뽑을것이다.

작년엔 처음으로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영상 편집이란걸 해봤는데 이때도 직접 처음부터 편집 툴을 이것 저것 써가며 영상들을 매일같이 만들어서 올렸다. 그러다 보니 채널이 커져서 편집자를 구할 수 있는 시기가 왔는데, 이미 수십개의 영상을 직접 만들어보니 어떤 기준을 세우고 사람을 편집자를 뽑아야 할지 저절로 알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이런 경험 없이 편하게 광고로 구독자들을 모으고 다른 사람에게 처음부터 영상 편집을 시켰더라면 어떤 영상이 좋은 영상인지 혹은 어떻게 하는 편집이 좋은 편집인지 몰랐을거다. 또 직접 편집을 해보니 영상 편집하고 자막을 다는데 드는 수고가 얼마나 큰지 알아서 자연스럽게 같이 일하는 편집자에 대한 empathy도 생기고 합리적인 요구와 적정한 보상만 하게 된다.

이런 경험들로 인해 생긴 팀 빌딩에 대한 내 철학은 어떤 롤이든 직접 해보는 과정을 거친 이후에 사람을 찾아야 올바른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뽑을 수 있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거다. 이게 바로 “일식집 사장은 회를 썰 줄 알아야 하는” 이유인 것 같다.

P.S. 유튜브에서 우연히 본 영상인데 박진영이 혼자서 노래와 안무를 다 만들어내는걸 보고 이 글을 썼다. 하나는 무려 12년 전에 올라온 영상이다.

  • https://youtu.be/MpHRqaEUMhs
  • https://youtu.be/pNBTxeAR6oc